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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과학, 철학

자살 올림픽

by sh1tb1og 2024. 10. 13.

프롤로그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바로 '죽음'이라는 개념입니다. 매년 약 5천 5백만 명이 죽는데, 감이 잘 안오죠? 쉽게 비교하자면 매년 미얀마 전체 인구 혹은 스타 디스트로이어 200대 혹은 나뭇잎 마을 688개가 터져서 죽는다고 생각하면 되요. 그리고 일단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축하합니다. 님은 자살 올림픽의 참가자가 되었으니까요 (짝짝짝).
 
자살 올림픽의 규칙은 아주 간단해요. 1등은 독특한 방식으로 자살 혹은 죽은 한 사람에게 돌아가죠. 그리고 노무현씨께서 상금 100억원을 우승자에게 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물론 이겼다는 것은 디졌다는 거니까, 돈은 님이 직접 받는 게 아닙니다. 가족이나 애인이 받겠죠? 그러니 잠깐 가족을 신경 쓰는 척해 보자고요.
 
그대신 룰이 있습니다. 죽음은 무적권 사고처럼 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즉 한국에서 유행하는 밧줄 노끈 번개탄 수직낙하 하직법이나, 번개 치는 날에 일부러 연을 날린다거나 미국이나 브라질 같은 곳에서 경찰에게 비비탄 총을 장난으로 쏘는 시늉 그런 건 룰 위반인 겁니다. 통제할 수 없는 사고여야 합니다. 만약 비행기 추락 사망사를 선택한다면, 간단합니다. 에어프랑스나 아메리칸에어라인 같은 걸 타고 뭔가 잘못되길 기다리면 됩니다.
 
1.
치명적인 비행기 사고를 당할 확률은 약 1,100만 분의 1입니다. 그러니까 매일 비행기를 탄다고 해도 사고를 당하려면 약 3만 년은 살아야 한다는 건데, 그건 별로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겠죠?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바로,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 입니다. 로켓 발사 중에 사망할 확률이 100분의 1 정도라서 비행기 사고사 보다는 낫긴 하지만, 문제는 최소한 석사 학위가 있어야 하고, 아주 건강해야하는 조건과, 개 쎈 멘탈이 필요합니다. 이건 또 다른 도전일 수도 있겠죠.
 
2.
흠, 그럼 번지점프는 어떨까요? 지금까지의 사고사 기록으로는 번지점프로의 사망 확률이 약 10만 분의 1 정도입니다. 산악 등반은? 1700분의 1 정도네요. 산악 등반이 설악산이 아닌 네팔에 있는 그 산들에서 한다면 160분의 1로 올라갑니다. 실제로 6000m 이상의 고도를 오르면 10분의 1 정도로 확률이 확 높아지죠. 1등의 가능성이 보이나요? 좀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보통 님 포함 주위 사람들은 ‘그런 산’은 잘 안 오르니까 실현 가능성은 굉장히 적다고 할 수 있죠. (정은향은 작년 겨울에 록키산맥에서 조난 당한 적이 있다) 그럼 여행은 어때요? 멕시코에서는 매년 약 1000명이 전갈에 물려 죽고, 인도에서는 매년 1만 5천 명이 뱀에 물려 죽습니다.
 
3.
아프리카로 떠나 볼까요? 애기하마를 보신적이 있나요? 아주 귀엽죠. 하마는 후피동물목 계열에 속하는데, 이게 라틴어로 '살인 황소'라는 뜻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하마로 인해 사망한 사고가 연간 약 3000명이었던 적도 있어요. 근데 이것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죠.
 
4.
그렇습니다. 가장 확실한 죽음은 그냥 사는 겁니다. 지금 님이 끔직하게 현실을 살아가듯이 말이죠. 왜냐면 현대의 인간은 그런거 잘 못하거든요, 현실에서 벗어난다는 것. 지난 세기 동안 담배로 약 1억 명이 죽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술과 케타민을 즐기는 개뚱땡이시라면, 성인병 및 각종 합병증 또는 다윈 사고사를 노려볼 수도 있습니다. 비만으로 작년에만 미국에서는 약 30만 명이 죽었어요. 술과 관련된 사고로 8만 명이 죽었고, 수십만 명이 약물 남용으로 사망했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암이라는 새끼는 우리 중 7명 중 1명을 데려가고, 심장병은 그 절반 정도, 뇌졸중은 23명 중 1명을 이세계로 보냅니다.
 
이 모든 게 증명하는 건, 당신이 두려워하는 죽음의 방법들이 실제로 당신을 죽일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는 겁니다. 죽음은 생각보다 엄청 지루할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까 기운 내세요?
 
5.
사실, 여기까지 말 나온 김에, 애초에 님이 태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지 알아봅시다. Dr. Ali Binazir라는 사람이 이걸 수학적으로 계산해봤는데, 이게 또 확률이 엄청나거든요.
 
당신 부모가 ‘정상적인 인간’들처럼 사회 생활을 했다고 가정했을 때, 그들이 만날 확률은 약 2만 분의 1입니다. 그들의 아이를 낳을 확률은? 현재 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약 2천 분의 1 정도. 이제 그들이 정말 만났고, 당신의 애미가 현(혹은 전) 애비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아빠의 손목에 있는 개쩌는 시계가 애플워치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엄마를 무시했거나, 매일 식사시간에 당근 암살을 피해갔다고 치고, 둘이 뿌슝빠슝 했다고 해봅시다. 그럼 님이 태어날 확률, 즉 그 특정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당신이 태어날 확률은 약 400경 분의 1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전부가 아니죠? 당신이 태어나기 전 훨씬 전에도, 모든 조상들이 다 만나서 후손을 남겼죠. 대략 10만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이 다 만날 확률은 10의 45,000승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10만 번의 만남마다 성공적인 관계를 맺고, 정자와 난자가 모두 맞아 착상까지 하는 확률도 계산해야 합니다. 그 확률은 10의 2,640,000승 분의 1 정도에요. 숫자가 그냥 너무 커서 제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쉽게 예를 들어, 비틀즈 한 봉지에 들어있는 빨간색 곱하기 주황색 곱하기 파란색에 몇 조 개 정도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자 수를 곱하고, 당신이 살아온 시간만큼을 더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에필로그.
 
결론적으로, 비행은 생각보다 안전하고, 님의 죽음은 아마도 존나 지루할 것이고, 님의 탄생은 전설 포켓몬 뮤츠보다 더 희귀한 것이란 것. 그니까 끔찍한 현실이어도 잘 살아봐라 이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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