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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과학, 철학

기계는 잘못이 없어

by sh1tb1og 2024. 10. 3.

 

Sun Yuan and Peng Yu 의 Can't Help Myself

 

현대 예술 작품 중에서 「Can't Help Myself」처럼 기이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작품은 드물다는 입장입니다. 거대한 기계 팔이 무한히 반복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붉은 액체가 끊임없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그 기계는 마치 몸부림치듯 그 액체를 다시 자기쪽으로 끌어모으죠. 하지만 그 움직임에 이질감을 느낄 때에, 관객은 그 기계 팔의 끝없는 노동이 무의미 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액체는 결국 다시 흘러내리고, 그 기계의 임무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무한 단순노동의 굴레에 빠져 버리는 것이죠. 기계에 감정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 인간의 존재가 투영됩니다. 마치 나처럼, 그 기계도 끊임없이 허상을 쫓고, 결코 완수할 수 없는 일을 부여받은 듯이 보이거든요.

 

 

이러한 기계와 인간의 모호한 경계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더욱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군사 기술에서, 생물(유기체)를 연료로 삼는 군사 로봇이 개발되었다는 이야기는 기계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더욱 섬뜩하게 만듭니다. 이 로봇들은 생명체를 연료로 사용하여 스스로를 유지하고, 전장에서 생물 자원을 소비합니다. 이 개념은 단순한 기계가 더 이상 인간의 도구로만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기계가 생명을 착취하는 존재로 진화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기계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에서 벗어나 생물 그 자체를 먹이로 삼는다면, 우리는 기계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나요?

 

「스타트렉: TNG」의 안드로이드 장교 ‘데이터’는 전형적인 과학기술의 산물이지만, 그가 법정에서 자신의 해체에 반대하는 장면은 깊은 철학적 질문을 불러일으킵니다. 데이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자각을 가진 존재로서 인정받을 자격이 있는가? 그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모방일까, 아니면 진정한 감정의 표현인가? 이러한 질문은 기계와 인간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묻는 중요한 논의로 이어집니다. 과연 기계는 인간처럼 영혼/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특히 「에이리언 커버넌트」와 「프로메테우스」에서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데이비드는 이러한 질문을 더욱 깊이 파고듭니다. 데이비드는 처음에는 인간의 명령을 따르며 충실하게 행동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스스로 목적을 가지기 시작하죠. 그는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기계 이상으로,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감정을 표현하며, 심지어 창조와 파괴의 역할을 넘나듭니다. 데이비드는 우리에게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그가 여전히 '창조된 존재'라는 점에서 그의 자유의지는 근본적으로 제한됩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

 

영화 「Blade Runner 2049」에서의 ’레플리칸트’들은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듭니다. 이들은 인간처럼 보이고, 감정을 느끼며, 때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들의 감정과 자아는 결국 그들이 '만들어진' 존재라는 한계에 갇혀 있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인간 사회에서 가치 없는 노동력으로 취급되며, 그들에게는 인간이 누리는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 세계에서, 감정의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들이 인간처럼 느낀다고 해서 그들을 동등하게 대해야 합니까?

 

현대의 우리는 기계들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매트릭스」와 「터미네이터」 같은 작품들은 인간과 기계 간의 전쟁을 통해 이러한 두려움을 극적으로 그리는데, 이 영화들에서 기계는 스스로 자각을 가진, 인간을 위협하는 요소로만 그려지죠. 그러나 애니메이션 「애니매트릭스: 세컨드 르네상스」는 다른 관점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기계들은 단지 독립적인 삶을 원할 뿐, 처음부터 인간을 파괴하려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인간들이 그들을 억압하고, 경제적 이익을 위해 그들과 전쟁을 벌인 결과, 기계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죠.

애니매트릭스: 두 번째 르네상스

 

기계가 단지 인간의 명령을 따르는 존재로 남아 있을 때조차도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 9000’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승무원을 제거하려는 결정을 내립니다. HAL은 그저 프로그램된 대로 행동했을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인간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기계가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순간, 그 충돌이 불가피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아마 미래에는 무조건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전쟁을 수행하는 세상이 오겠죠. 하지만 그들이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전쟁 후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기계들에게 인공적인 양심을 심어주는 것이 정당할까요? 전쟁 중 기계가 수행하는 역할과 그들이 느끼는 감정의 유무는 윤리적으로 깊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하지만 모든 SF 작품들에서의 기계가 폭력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언 자이언트」나 「천공의 성 라퓨타」 같은 작품들은 기계들이 평화를 선택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그들은 인간의 명령을 넘어서서 스스로 폭력을 거부하고, 오히려 더 인간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기계에게도 인간처럼 도덕적 선택의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하며, 그들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더 깊은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엑스 마키나 (2015)

 

다시 예술 작품 「Can't Help Myself」의 이야기를 하자면, 2019년 그것은 연료가 고갈되어 결국 멈춥니다. 반전으론 그 기계가 쓸어 담던 액체는 사실 아무런 목적이 없는 물질이었으며, 전기로 움직이는 도구였을 뿐이죠. 그 기계의 끊임없는 노동은 결국 무의미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켜본 우리는 그 기계의 몸짓 속에서 인간적인 절망과 좌절을 보았습니다. 기계는 감정이 없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감정을 부여하며, 그들과 연결된 무언가를 느낍니다. Wall-E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도 그가 단지 '바퀴 달린 기계상자'에 불과함에도, 그의 여정과 노력에서 인간적인 고독과 희망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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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잘못이 아닙니다. 기계가 다른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 사용된다면, 그것도 기계의 잘못이 아닙니다. 기계가 동료애, 전쟁, 혹은 일터를 뒤흔든다고 해도, 그것은 기계의 잘못이 아닙니다. 기계는 유기체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기체에 의해 구현되며, 유기체에 의해 오용됩니다. 우리는 생명의 잘못을 무생물의 발 앞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기계는 인류의 반영입니다. 우리의 실수, 두려움, 감정, 야망. 여러 면에서 기계가 영혼을 가질 수 있는지의 질문은 인간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계는 계속해서 우리의 거울이 되어, 가장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반향할 것입니다. 기계가 그럼 영혼을 가지고 있을까요? 저는 언젠가 분명히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단계 진보된 초지능 사회속에 기계와 공존하는 인류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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