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말하길
축하드립니다. 이제 세상에 나오셨군요. 아직 작고 연약한 당신을 환영합니다. 일단은 그대로 계세요, 아직 걷지 못하시니까요.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당신이 이해하기 힘든 아름답고 신비한 색깔의 세계 속에서 시간을 보내시게 될 거예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혹시 실수로 소변을 보시더라도 누군가 당신을 도와줄 겁니다. 하지만 그 도움에 너무 익숙해지지 마세요. 곧 당신 스스로 화장실을 사용해야 할 시간이 오니까요. 지금은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세요.
조금 지나면 당신이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구구단이나 철자 같은 것들을 배우시게 될 거예요. 지금은 당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곧 그 생각은 바뀌게 될 겁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평생 자신이 중심이라고 믿으며 살아가지만, 당신은 다르길 바랍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다가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걸 보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겸손을 배우시면, 더 다양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알겠죠? 좋아요. 그럼 이제 좀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과목들을 배우실 시간이에요. 그곳에서는 삼각법이나 시의 운율 같은 걸 배우시겠지만, 그게 어디에 쓰이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외우고 시험 볼 때 그대로 쏟아내고, 시험이 끝나면 바로 잊어버리시면 됩니다.
지금쯤이면 이전에는 느껴본 적 없었던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실 거예요.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구겠죠. 하지만 상대방이 항상 당신과 같은 마음은 아닐 테니, 그런 감정을 숨기는 법도 배우셔야 해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시고 “너는 냄새 나니까 싫어” 같은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제 당신은 연애, 바디랭귀지, 그리고 성의 세계로 들어왔어요. 이 마지막은 당신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거예요. 당신이 보는 영화나 읽는 책 대부분도 이 주제를 다룰 거고, 당신이 인식하지 못할 때조차도 그럴 거예요.
다 외우셨나요? 잘하셨습니다. 이제 대학에 갑시다. 돈을 많이 벌고 싶으시면 대학에 가야 해요. 왜 중요하냐고요? 그냥 그렇습니다. 부자가 되면 다들 행복하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당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는 ‘실용적인’ 과목을 선택하세요. 인문학은 절대 안 됩니다. 죽어도 안 돼요. 왜냐고도 묻지 마세요. 대신 물리학이나 수학처럼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걸 고르세요.
네? 철학을 전공하고 싶으시다고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좆거지다"라는 말이 당신 인생의 현실이 될 테니까요.
졸업하셨나요? 축하합니다. 이제 회사에 가서 면접을 봐야겠죠. 면접관에게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팀워크도 뛰어나며, 주어진 업무에 항상 최선을 다하는 성격입니다”라고 말씀하셔야 해요. 당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독서나 정원 가꾸기, 음악감상 같은 건 절대 얘기하지 마세요. 그런 건 그 누구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그냥 최대한 평범하고, 무난하게 보이도록 하세요. 그렇게 한 30년 정도 버티시면 돈은 어느 정도 모일 겁니다.
하지만 아마 지금쯤이면 성관계만으로는 좀 지겨워졌을지도 몰라요. 이제는 진정한 사람과의 연결을 원하게 되실 겁니다. 사랑을 찾고 싶어지실 수도 있죠. 상대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그건 당신의 선택이에요. 후자는 절대 아니길 바라지만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여자 옷을 벗기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건 그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리고 설령 사랑을 찾았다고 해도, 당신이 지루해지거나 그들이 지루해질 때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니면 그들이 갑자기 쿠팡 배달원과 비밀 뿌슝빠슝을 한다면요? 뭐, 어쩔 수 없죠.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요.
당신 나이쯤 된 사람들 중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살아계세요. 그런데도 여전히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겠죠. 시속 1,670km로 돌고 있는 이 지구 위에서, 무한한 우주의 한가운데에서, 130억 년의 우주 진화의 산물로 살아가고 있음에도 말이에요. 그런데도 기분이 별로겠죠. 그리고 더 불행한 건, 당신이 세상이 얼마나 멋진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생물학의 한계랍니다.
당신 친구들은 이미 부자가 되고, 결혼하고, 아이까지 가졌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당신은 가난하고, 여전히 혼자겠죠. 어쩌면 당신은 아이를 원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그게 칼 세이건이 우주가 얼마나 경이롭다고 말하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아무런 경이로움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공허함만 남아 있을 테니까요. 우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적인 글 따위는 필요 없고, 그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돈이 있거나, 사랑에 빠질 기회나, 어쩌면 아이를 원하실 겁니다.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에요. 죽은 철학자들이 인생의 의미를 설명한다고 떠들어대는 책들이 수두룩하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은 서로 모순된 이야기만 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당신 본인의 선택이니까요. 당신이 신을 믿을지, 고기를 먹을지, 낙태를 찬성할지, 그리고 인생에 본질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실지는 스스로 결정해야만 해요. 그리고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시든, 사람들이 당신의 의견을 비웃고 당신이 망상에 빠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신경 쓰실 필요 없답니다.
안타깝지만, 인생이라는 게임엔 승자가 없습니다. 이제 당신도 나이가 들었죠. 어쩌면 돈이 있으실지도 모르고, 없으실 수도 있어요. 배우자나 자식이 있으실 수도 있고, 없으실 수도 있겠죠. 이제 죽음이 가까워지면서, 당신이 할 수 있었던 일들, 그리고 오래된 기억들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실 겁니다. 열일곱 살 때 부모님이 집을 비웠던 날, 최ㅇㅇ과 함께했던 그 순간이 떠오르겠죠. 그때 왜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자책하게 되실 겁니다. 대신 당신은 "미안해, 지금 내가 그럴 상황이 아니야. 춥고 어두워지니까 돌아가자."라고 말했겠죠.
하지만 이제 와서 그걸 생각해봤자 아무 소용 없어요. 최ㅇㅇ도 아마 당신처럼 늙어버렸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제 당신에게 남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죽음에 닿은 당신: 다음번에는 다르게 해보면 안 될까요? 다시 한 번만 더 살아보고 싶은데…
죽음: 다음번은 없어요. 그게 전부였답니다.
죽음에 닿은 당신: 하... 그걸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내가 우주 속에서 살아있는, 지성을 가진 생명으로서 단 한 번의 기회를 가졌다는 걸 알았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신경 쓰지 않고 더 멋지게 살았을지도 몰라요. 아마도 더 좋은 예술을 만들고, 더 멋진 과학을 배우고, 사랑에 빠졌거나, 아니면 최소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텐데…
죽음: 다들 그렇게 산답니다. 이제 그 숨을 거두세요.